2008/11/18 14:27

어떤 동화 - 렛 미 인(Let the right one in)

 옛 생각이 난다. 취미는 짝사랑이요 특기는 훔쳐보기였던, 키가 170이 채 되지 않았지만 몸무게는 학교 최고수준이었던 고도비만 소년, 십수년전의 나.(지금의 키는 180. 중 3때 이후로 170을 넘겼던 것 같다.)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쉬는 시간엔 무얼하는지, 방과 후엔 어떤 경로로 집에 가는지 훔쳐보며 괜히 마음 졸였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같으면 스토커로 몰려 경찰에 잡혀가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다 싶은데, 생각해보면 왜 그런 무식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무서웠겠지. 먼저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 두려웠을 것이고, 알고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아이가 아닐른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웠을게다. 지금도 나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그 기간이 줄었다. 어느 정도 바라보다 뻔뻔하게 고백도 하고, 사귀다 아닌 것 같으면 고백을 했던 순간의 설레임을 새까맣게 잊고 얼굴에 철갑을 두른 듯 헤어지자는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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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나는 어느새 곧 삼십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순수함 같은 것은 어느샌가 유치함이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었나보다. <렛 미 인>은 정말 오랜만에 만난 진짜 '재미있는' 영화 였다.  동시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곤 조금 슬퍼졌다. 만일 언젠가 내게 그런 순수가 다시 돌아 온다면, 나는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락했다거나 하는 뜻이 아니다. 나는 타락하지 않았다. 단지 순수한 30대는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을 뿐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는 그렇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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